건설현장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김왕영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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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왕영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017년 중앙교섭을 하고 있다. 170여개 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일을 많이 겪었다.

교섭요구에 대한 회사 대응은 일단 교섭요구사실공고를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법에서 하라고 돼 있다고 따지고 압박하는 과정을 거치면 좀 늦더라도 공고를 한다.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끝내 공고를 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 판단을 받아야 한다.

회사는 공고 결정이 나오면 공고를 하면 그만이다. 이미 시간을 끌었고 원하는 바를 이뤘기 때문이다.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 교섭요구노조 확정공고까지 마쳤다. 교섭요구노조가 건설노조밖에 없는 회사가 많았다. 이제야 절차가 끝났다 싶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있겠는가.

회사 건설현장은 전국에 산개해 있다. 모든 건설현장에 공고를 해야 하는데 착오로 일부 건설현장에만 공고를 했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고의일 수도 있고 착오일 수도 있지만, 건설노조는 교섭을 요구하면서부터 모든 건설현장에 붙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조합원이 있는 현장까지는 공고 여부를 확인했지만 조합원이 없는 현장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회사는 제주도에 건설현장이 있는지 여부를 노동조합에 알려 줄 의무가 없다. 결국 공고를 보지 못해 교섭에 참여하지 못한 노동조합이 있으니 다시 교섭요구사실공고부터 해야 하고, 건설노조 교섭권은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회사의 방어논리가 완성됐다.

공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아닌지 경계선도 애매하다. 노동위원회는 공고 여부를 확인할 때 공고문이 부착돼 있는 사진만 확인한다. 공고문을 부착하고 사진을 찍은 뒤 공고문을 뜯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공고문을 보지 못한 다른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박탈될 수 있다. 회사가 이를 명분으로 "공고를 보지 못해 교섭에 참여하지 못한 노동조합이 있으니 다시 절차를 시작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최초 교섭요구사실을 다른 노동조합에게 정확히 인지시키려면 회사 전체 직원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해야 한다. 노동위원회가 공고문 부착장소를 지정해 주고 CCTV를 제공해 계속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회사 장난질로 공고문을 보지 못한 '선의의 3노조(어용노조)'가 발생할 수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회사에 실효적인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 회사 귀책사유로 공고가 지연되면 개별교섭에 동의한 것과 동일하게 노동조합이 교섭권을 가지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 장난질로 노동조합이 교섭시기를 놓쳐 피해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가 더 반갑지만.

누가 이렇게 단체교섭을 어렵게 만들었나. 노무사시험을 공부할 땐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합헌결정이 나온 만큼 법조문대로만 하면 합리적으로 단체교섭이 진행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조합과 대화 자체를 원하지 않는 회사가 너무 많다. 법조문대로 절차를 진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현직 노무사 중에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상 날짜 계산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절차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살아남은 명분 중 하나는 효율성이었다. 창구단일화로 교섭비용을 줄여 효율적으로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짐작건대, 말도 안 되는 창구단일화 관련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노동위원회 공무원들 인건비만으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비효율적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교섭비용이 절약되고, 어떤 점이 효율적인지 모르겠다.

단체교섭에 들어가면 노동조합도 회사도 골머리가 아프다. 제발 시작만이라도 좀 편하게 하자.


김왕영  labor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