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전으로 밀려난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해


조은혜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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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혜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



“줄 거 다 줘 가면서 일하면 어떻게 장사를 해? 식당일 하는 사람들 중에 받을 거 다 받아 가면서 일하는 사람 어디 있냐고. 그래도 내가 잘 챙겨 주는 편이야, 알아?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주 6일 근무, 일 12시간 근무한 노동자에게 월급 180만원만 지급한 사장이 고용노동청 조사 중에 했던 말)

“선생님, 일하시다가 넘어져서 다친 거는 산재처리가 됩니다. 사장이 산재처리 안 해 준다고 했더라도 선생님이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시면 돼요.” “근데요. 노무사님. 그러면 사장님께 제가 폐를 끼치게 될까 봐서요.”(청소업무를 하다 문턱에 걸려 넘어져 갈비뼈가 골절된 노동자가 상담하러 와서 했던 말)

“그런데 아무리 임금체불이 맞다지만 내가 사장이라도 그 근로자 해고하고 싶지. 이것저것 따지면서 부득불 다 받아 내려고 하는 거 보면 평소에 어떻게 했을지 뻔하고. 빨리 합의하고 사직서 받아 내라고 했어.”(어느 노무사가 했던 말)


위 세 가지 상황은 대사만 조금 바뀐 채로 내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듣고, 마주칠 수 있는 상황들이다. 겪을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히면서 답답해지는 상황들이기도 하다. 세 가지 상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리(權利)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자에게 ‘당연히’ 발생하는 법률상 힘이다. ‘당연(當然)하다’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땅히 이뤄져야 함을 의미하며, 누구도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권리를 권리로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권리를 가진 사람이 눈치를 봐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난무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을 때 체불된 임금 전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무사는 많지 않다. 빠른 일처리를 위해 합의를 종용하는 일부 근로감독관들과 더불어 민사로 진행할 때 걸리는 기간을 무기 삼아 임금체불이 확정돼도 체불금액을 지급하지 않고 배짱을 부리는 사용자들 때문이다. 생계로 인해 급하게 돈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일부 금액에 합의를 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에서 말이다.

최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해 인터넷 여론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공장들 다 해외로 이전하면 어떡하나. 돈 몇 푼 받으려다가 일자리 잃을 듯”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시스템과 경제상황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고 심지어 질타를 받기도 한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단순한 시스템과 약한 처벌규정의 문제일까.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위기 상황이라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권리를 권리로,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 부재가 문제다. 나아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노동인권교육 부재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대부분 대학교 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직장에 입사해 노동을 제공하게 되며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한다. 그만큼 노동은 노동자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 생계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초·중·고 의무교육과정 어디에서도 노동의 가치와 노동인권, 노동자 및 사용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모르다 보니 권리를 주장할 때 위축되고, 뉴스나 여론에서 호도하는 경제위기, 다시 말해 ‘그래도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는 것이다.

근로감독관 증원과 노동법원 설치, 부당노동행위 감독 강화 등의 제안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강의를 나갈 때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방안으로 ‘사람들의 인식 변화’라는 진부하고 뻔한 내용을 맨 마지막에 넣곤 한다. ‘말은 쉽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인식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그 어떤 방안도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 전문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피고(기아차)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시설을 해외로 모두 이전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가정적인 결과를 미리 예측해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략) 원고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이를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관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지만 이 판결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현재까지 얼마나 노동자들의 권리가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 신청을 받아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단을 연계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이달 2일에는 서울 각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지역단위들이 모여 서울 청소년 노동인권 지역단위 네트워크(서청지넷)라는 이름으로 발족식을 했다. 이처럼 각 지역단위에서 일부 청소년들에게만 이뤄졌던 노동인권교육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시작단계이긴 하나, 적어도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세대부터는 노동의 가치와 본인이 가지는 권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일하게 될 것이며, 장래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매우 필요한 때다.


조은혜  labor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