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단체 공동성명서]

 

개편을 이유로 한 일방적 방송작가 해고갑질, 부당한 표준계약서 변형과 부당해고를 규탄한다.

 

2월 22일에서 23일 사이, SBS가 길게는 4년 넘게 일해 왔던 <뉴스토리> 작가들에게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하였다. 해고통고는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가 전부였다. SBS 보도본부는 이러한 일방해고가 작가들과 계약한 ‘계약서’에 따라 ‘계약종료’한 것으로서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SBS 보도본부는 2월 초 해당 작가들과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 계약서에는 작가들과의 계약기간을 개편시기인 3월 30일까지로 명시하고, “개편이 있을 경우 계약이 즉시 종료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는 방송산업 핵심인력인 방송작가의 권익보호 및 집필환경 개선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문체부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지상파 방송사들이 약 3년여에 걸쳐 조항 하나하나에 대해 법률적 검토와 합의를 통해 완성하였고 올해 1월부터 해당 표준계약의 사용을 문제부가 적극 권고했다. 해당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4조는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으며, 제1항 단서에서는 계약기간의 만료 시에도 본 계약 3조에서 약정한 집필 횟수가 남아 있을 경우, ‘작가’와 ‘방송사 또는 제작사’는 상호 합의하여 계약기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제4조 제2항, 제5조에서는 개편, 편성변경, 원고수정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나 부득이한 사유 발생으로 계약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호 “합의”에 의하여 변경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SBS 보도본부는 표준계약서의 제4조 제1항 단서를 삭제하고, 제2항에 대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합의 대신 ‘계약만료일 이전이라도 계약이 즉시 종료될 수 있다.“고 내용을 변경하였다.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은 오랜 관행에 따라 구두계약만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원고를 집필해 왔다. 때문에 뉴스토리 작가들도 처음으로 근로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해 본 것이었다. 처음 작성해보는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볼 새도 없이,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측의 설명만을 믿고 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이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이며, <뉴스토리> 작가들도 동일했다. 작가들은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 너무 짧은 계약기간 등에 대하여 한국방송작가협회 저작권팀에 자문을 구했다. 저작권팀은 뉴스토리 작가들이 받은 계약서가 문체부가 권고한 표준계약서가 아닌 사측에 유리하게 변형된 계약서임을 확인했다. 이에 작가들은 ‘불공정 계약서이니 일부 조항을 표준계약서의 취지에 맞게 수정하여 작성하라’는 한국방송작가협회의 권유에 따라 문제의 조항들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SBS 보도본부는 수정된 계약서 대신에, 계약서를 작성한지 한 달도 되기 전에, 개편을 이유로 일방적인 계약해지(해고)를 통보하였다.


SBS 보도본부는 이번 사태가 작가들과 면담을 통해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실제 개편을 이유로 작가를 자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른바 방송사 ‘관행’이다. 그러나 이는 열악한 방송작가들의 을의 지위를 악용한 수퍼 ‘갑’ 방송사의 갑질일 뿐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하여 ‘표준계약서’를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SBS는 표준계약서를 악용, 수정하여 <뉴스토리> 작가 전원을 일시에 해고한 것이다. 이에 <뉴스토리> 작가들은 단순한 업무 복귀를 넘어 공식적인 사과요구, 책임자 징계, 재발방지대책 요구를 통해 방송계의 잘못된 관행을 알리고 바로잡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SBS 보도본부는 이러한 <뉴스토리> 작가들의 요구에 대하여 본래의 계약기간인 3월 30일까지의 원고료를 지급하겠다는 답변으로 최종 입장을 밝혔다.


우선은 이들이 작성한 계약서에 차마 공식적이지 붙이지 못한 “근로”라는 말이 안타깝다. 이번 논란에 있어, 방송작가들과 SBS 사이에 작성한 계약서는 문체부 등이 작성한 표준계약서를 변형한 ‘계약서’로 불리고 있다. 현재 방송작가들의 대부분이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방송작가들의 업무형태나 종속성, 방송사의 지휘·감독성, 한 프로그램에 대한 전속성 등을 고려하였을 때, 전일제 노동자(하루 8시간, 주5일 근무제)와 다소 근무형태가 다른 일반노동자나 다름이 없다.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처럼, 오히려 방송작가 대부분은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보호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번 경우만 해도,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서의 내용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근로계약서 변경 또는 수정 요구를 통하여 노동자 전체가 일시에 해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SBS 보도본부는 방송계 수퍼갑으로서, 당당히 방송작가 전원을 해고함으로써 우월한 지위를 통해 방송작가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표준계약서를 변형한 ‘계약서’ 작성강요를 통해 법률적 문제 역시 최소화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뉴스토리> 방송작가 집단해고 사태가 SBS 보도본부와 방송작가간 ‘계약서’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계약서’가 <뉴스토리>가 제작진행 중에 작성되었고, 3월 말 개편시기를 앞두고 2월에 작성되었으며, 작성 당시 노동자들이 계약 내용에 대하여 의문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표준계약서대로 했고 형식적일 절차”라고 보도본부가 설명한 점, 작가들이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계약서의 작성 및 제출을 보도본부가 독촉한 점, 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보도본부와 방송작가 간의 계약서 작성시 대등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 방송작가들이 첫 근로계약서 작성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설명이 전혀 없었던 점, 이후 계약서 내용 변경을 요구하자 계약종료를 통보한 점, <뉴스토리> 폐지가 아닌 포맷 변경에 따른 작가 변경 필요성이 계약종료의 이유로 들고 있는 점, 방송계 작가들에 대한 표준계약서의 내용을 완전히 개악한 체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작성된 계약서였던 점 등이 고려하면, 계약서만에 근거한 SBS 보도본부의 일방적인 계약종료 통보가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번 <뉴스토리> 사태는 일명 “표준계약서”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도 보여준다. 문체부의 ‘표준계약서’에는 어떠한 법률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사용자가 맘대로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없다. 근로계약서나 그 밖의 계약서의 내용이 사용자 편의와 실리에 따라 맘대로 작성됨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계약서를 작성만 하면 오히려 이후에는 노동자가 해당 계약서에 구속되어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자에게 해당 계약서의 부당한 내용 뿐만 아니라 계약서의 내용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관철시킬 수 있는 힘과 장치가 필요하다.


최근 SBS는 거듭 방송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반노동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어 아쉽다. 관행이라고 하여 모든 관행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관행을 관행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그동안 방송계 비정규직으로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지 못했던 방송작가에 대한 부당해고 관행을 이제라도 SBS가 앞장서서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 첫걸음으로 <뉴스토리> 작가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공식사과하고, 책임자를 징계하는 동시에 이러한 일이 다시 이루어지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게 되길 기대한다. 동시에 방송계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부당노동실태에 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는 합동조사 및 대책을 마련하고, 보다 나은 노동환경에서 보다 좋은 방송프로그램들이 제작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방송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방송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게 되기를 바란다. 권리를 향한 첫 걸음이 어렵고 무섭겠지만,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처럼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방송계 노동자들은 뼈저리게 느껴왔다고 생각된다. 노동법률단체 일동은 방송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한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겠으며 최대한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8. 3. 28.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  법률원(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