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방송국 기자도 "장기자랑 사라졌다, 고맙다"

[인터뷰] 출범 1년 맞은 직장갑질119... "제2의 양진호 막으려면, 뭉쳐야"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과 이진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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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성심병원 사태가 터진 뒤, 다른 병원들에서도 '장기자랑 갑질'이 사라졌다는 메일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JTBC기자가 와서 '신입들이 선배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불거졌던 한림대 성심병원 갑질 사태를 떠올리며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말했다. 한림대 성심병원은 하나의 사례일뿐이다. 청와대부터 대기업, 시민단체, 군대까지 '직장갑질'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만큼 직장갑질119는 분주했다.

직장갑질119는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 등 241명이 직장 내 부당한 업무지시, 갑질 등을 고발하기 위해 꾸린 민간 공익단체다. 지난해 11월 1일 출범했다. 1주년이었던 지난 1일 오후 3시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과 이진아 이산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0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거 갑질인가요?" - "네, 갑질 맞습니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위원이 포스터를 들고 있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위원이 포스터를 들고 있다.

ⓒ 이희훈

          

 
박점규 운영위원은 "1년이요? 10년은 된 것 같다고들 한다"라며 "한국사회의 민낯을 작은 컴퓨터 안에서 직면한 시간들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진아 노무사도 "직장인들이 버티고 있는 현실을 날것으로 듣는 시간이었다"라며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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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직장갑질119에서 진행한 상담만 2만2810건이다. '김장 갑질', '개목걸이 갑질', '마라톤 갑질', '마사지 갑질' 등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이 직장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수만 건 상담을 하면서 직장갑질119 스태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네, 그거 갑질입니다"였다.

이진아 노무사는 "법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맞아요, 억울하신 거 맞아요'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라며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문제가 안 되냐, 이상한 게 아니냐는 궁금증을 확인해 주는 작업이 더 많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때리거나 심한 말을 하는 등 노동자에게 어떤 행위를 한 것은 그나마 갑질, 부당한 일로 치부돼 왔다"라며 "그러나 앉을 의자를 주지 않는 것, 대기 발령이 아닌데도 업무를 주지 않는 것, 휴식공간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쉴 수 없는 것은 그러려니 해왔다"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직장갑질119에서 각종 갑질이 보도된 후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대우를 하지 않는 것도 갑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박점규 위원도 "지금 당하고 있는 일이 너무 억울하고 화는 나는데 직장 안에만 있다 보면 '원래 다 그런 것인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라며 "그랬던 분들이 직장갑질119를 통해 공개된 갑질을 보며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어 "장기자랑은 물론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로 지시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위가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갑질, 부당한 일이라는 기준이 생긴 것 같다"라고 했다.

"노무사도 갑질 신고하는 직장갑질 119"
 

 직장갑질119 이진아 노무사.

 직장갑질119 이진아 노무사.

ⓒ 이희훈

          

 
직장인들이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뭘까. 박점규 위원은 "익명이 보장되는 오픈채팅방에 법률가, 노무사 등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라고 했다.

온라인이지만 직장인들의 '뒷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점도 그 이유다. 이진아 노무사는 "카카오톡으로 상담을 진행 중인 분이 징계 건으로 당장 회의에 불려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라며 "억울해서 회의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라고 했다. 이 노무사는 "그건 상담자에게 손해일 수 있기 때문에, 회의에 들어가서 할 말들을 쭉 정리해드렸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노무사는 "최근에 한 노무사도 자신이 당한 갑질을 직장갑질119에 신고했다고 하더라"라며 "몰라서가 아닌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겠는, 도움이 간절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라고 했다.

거기다 노무사·변호사·노동 전문가는 물론 피해자들도 모여 있다 보니 직장갑질119는 그야말로 '어벤져스'다. 이 노무사는 "노무사로 일하면서 많이 했던 말이 '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혼자서 대응하기 힘드니 사례를 모아야한다' 등이었다"라며 "그때마다 무력감을 느꼈다"라고 했다. 이 노무사는 "직장갑질119에서는 스태프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집단적으로 사례를 모아 해결해나갈 수도 있고 언론 등 법이 아닌 방법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제2의 양진호 막으려면... 온라인 모임으로 뭉쳐야 산다
 

 직장갑질119 이진아 노무사와 박점규 위원.

 직장갑질119 이진아 노무사와 박점규 위원.

ⓒ 이희훈

           

 
그렇게 직장갑질119가 울린 '갑질경보'는 우리 사회를 바꿨다. 우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갑질'을 없앴다. 방송사가 비정규직 스태프에게 월급을 상품권으로 지급한 일은 '상품권 페이' 근절과 방송스태프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주 2회 마라톤 연습과 연 10회 이상 대회참석을 강요하던 한 가전제품 회사는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회도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등은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그 예방과 사후조치를 취업규칙에 명시하는 것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규정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상보험법 등을 개정하자는 내용이다(관련기사: [팩트체크] 양진호 때문에 재조명된 이 법, 이완영이 막았다?).

하지만 법에만 기댈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노무사는 "'주40시간 노동', '휴게시간' 등 법에는 명시돼있지만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은 많은 권리들이 있다"라며 "법 조항이 사문화되느냐 현실에서 살아 숨쉬느냐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몫이다"라고 했다.

제2의 조현민, 양진호를 막으려면 '뭉쳐야 한다'고 했다. 박점규 위원은 "'물컵 갑질' 사건 이후에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라며 "갑의 지위에 있는 이들도 사회적 분위기, 여론이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은 "하지만 조심하는 것도 한 순간이다"라며 "여론이 조용해지고 분위기가 사라지면 갑질은 다시 돌아온다"라고 했다. 박 위원은 "대한항공, 위디스크 등 회사들은 다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라며 "100인 이상 기업들은 용기를 내 노조를 만들어 갑질에 대항할 힘을 길러야 한다"라고 했다.

문제는 100인 미만 기업들이다. 갑질은 교묘해지고 비정규직, 여성, 하청 등 사회의 약한 고리를 향해간다. 그러나 이들은 노조를 조직할 힘이 없다. 2015년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62.9%인데 반해 100인 이상 300인 미만은 12.3%, 30인 이상 100인 미만은 2.7%, 30명 미만은 0.1%다. 박 위원은 "규모가 작을수록 사실상 노조를 만들기 힘들다"라며 "노조가 아닌 방법으로도 묶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찾은 게 '온라인 모임'이다. 직장갑질119는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활성화 해, 온라인 노조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게 목표 중 하나다.

대한민국 최초 '직장갑질지수' 조사... 갑질 비교하는 애플리케이션도 개발 중
 

 직장갑질119 박점규 위원.

 직장갑질119 박점규 위원.

ⓒ 이희훈

          

 
"2019년은 갑질 제로의 해로 만들겠다."

직장갑질119가 밝힌 포부다. 이를 위해 직장갑질119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직장갑질지수' 조사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토론을 통해 지난 1년간 받은 제보를 체계화해, 10개 영역 65개 문항으로 만들었다. 이 문항을 토대로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직장인 갑질지수'를 오는 20일쯤 발표할 예정이다.

이 조사를 통해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 남성, 제조업 등이 겪고 있는 갑질들이 수치화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최초로 내가 겪고 있는 갑질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박 위원은 "이 수치를 통해 자신의 회사를 대입해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갑질 표준지수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갑질지수 발표를 시작으로 12월에는 언론사, 자동차판매 대리점, 콜센터, 농수축협 등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해 갑질이 심한 기업을 발표할 계획이다. 갑질지수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준비 중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스태프들은 '열정 노동' 중이다. 설문조사에만 천 만원 단위의 돈이 든다. 직장갑질119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공익단체다보니 조사에 드는 비용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직장갑질119만 전담해서 활동하는 분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다. 노무사님이 더 계시면 상담 뿐 아니라 온라인 모임도 더 활성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모임을 온라인 노조로 발전해 사업장에 온라인 노조 조합원이 있으니 교섭하자고 해서 업종별로 모범협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가령 병원이라면 '태움하지 말자' 등 몇 가지 협약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를 아래로부터 바꿀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20일부터 '십시일반 모금'을 하고 있다. 직장갑질119 후원링크다. http://bit.ly/gabjil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