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민이 아닌 노동자로 광장에 나오자권오훈 공인노무사(서울도시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권오훈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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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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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훈 공인노무사(서울도시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우리는 1천만 서울시민 10명 중 1명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광장에 모이는 정치적 격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돌이켜 보면 1986~87년 민주화와 민주노조운동도 노동조합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파업과 시위 열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어느새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민중총궐기 발언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었다. 가세가 기울어 50분 거리 고등학교를 걸어 다녔고, 대학원서 접수비가 아까워 딱 2~3개 학교만 원서를 넣었으며, 집회 올 시간에 알바를 했으면 7만원을 벌 수 있었다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나는 이렇게 아등바등 버티는데, 어떻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 있나. 앞으로 어떤 맘으로 살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뒤편에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150만명이 광장에 나왔는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면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촛불집회 자유발언 절반을 차지한 대학생과 중고생들의 분노의 목소리에는 어김없이 빈부격차와 최악의 취업난 같은 경제적 불평등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10월 대격변의 시작은 노조 총파업으로 시작됐다. 2016년 9월27일 쉬운 해고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공부문노조 총파업이 벌어졌다. 철옹성 같던 박근혜 정부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염증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국정교과서·위안부 합의·사드 배치 등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저항이 큰 박수를 받았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권위적 군사적 정치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50만 국민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정치적 퇴행을 거듭하는 대통령에게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라는 떼창으로 화답했다.

국회 탄핵 논의를 시작으로 국정조사가 마무리되고 특별검사가 수사를 시작하면 촛불 민주주의는 조기 대통령 선거로 휩쓸려 들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기득권과 보수언론도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은근히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뀐다고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이 해체되고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 매우 의문스럽다. 지금과 유사한 상황은 30년 전에도 있었다. 87년의 거리 민주주의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냈다. 반면 87년의 거리 투쟁은 형식적 민주주의만 남기고 실질적 민주화를 좌절시켰다. 폭발하는 국민의 정치적 상상력과 에너지가 제도적 틀에 갇힐 때 국민이 좌절을 맛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 정치인이 “촛불을 드는 짓은 일반인들이 하는 거다. 국회의원은 의회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기존 정치가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에너지를 받아 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아니 묻고 싶다. 국회가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는가 말이다.

87년의 어젠다가 민주화였다면 2016년 어젠다는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 즉 불평등 해소와 전쟁 대신 평화, 연대가 의제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장의 정치는 계속돼야 한다. 왁자지껄 떠들고 억울한 것을 쏟아 내고 서로 위로하면서 대책을 말해야 한다. 촛불의 목표인 새로운 민주주의는 의회 혹은 선거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떠들고 외치고 요구하고 바꾸는 것 자체여야 한다.

87년 서울시청 앞에 모인 10만명의 민주주의가 이후 노조 민주주의 운동으로 확장됐듯이 2016년 광화문 민주주의는 다시 노조운동 속으로 확장돼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조합원들조차 노동자가 아닌 순수성이 강조된 정치적 시민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은 현재의 엄중한 정세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분명한 의제를 가지고 광화문 민주주의에 참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합원들과 현장 정세토론을 하고, 시민이 아닌 노동자로 자신의 문제를 들고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왁자지껄 시끄럽게 현장 조합원들과 정치토론을 시작하자.

대안은 광장의 정치다. 차기 대통령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매일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광화문 촛불에서 150만명이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바꿀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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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사이트 : 매일노동뉴스 "노노모의 노동에세이"

기사원문 URL : http://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332